휴먼다큐 사노라면 656회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방송
200년 고택
오랜 집 오랜 당신
경북 영양, 연당마을에는 200년 된 고택이 있다.
경북 영양 연당마을에는 영양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200년 된 고택이 있습니다.
고택의 주인은 이분순(89세) 씨와 정수용(88세) 씨 부부입니다.
한때는 집안일을 하는 이들이 열 명이 넘는 기세등등한 양반가였지만, 이제 집을 지키는 것은 노부부뿐입니다.
그런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3년 전 귀농한 큰딸 정선주 씨(68세)가 있습니다.
은행원으로 일하던 선주 씨는 아픈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퇴직 후 15년간 대소변을 받아 가며 홀로 수발을 들었습니다.
옛집에서 보고 배운 것이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었고, 언젠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쉽지 않은 세월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고향 마을에 돌아온 선주 씨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우리나라 3대 민간 정원 중 하나인 서석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퇴계학파의 문인으로 글솜씨가 빼어났던 선주 씨의 선조 정영방이 지은 서석지입니다.
마을 이름 ‘연당’도 서석지의 아름다운 연못에서 유래했습니다.
관리를 그만두셨지만 여섯 살 때부터 서석지를 돌봐온 아버지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서석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풍류를 아는 양반의 후손답게 한시를 멋들어지게 읊으시고, 선글라스까지 쓰고 시내로 출타하셨습니다.
글 읽기와 사교는 아버지 평생의 일상이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날마다 넓은 밭과 씨름하고 계십니다.
재령 이씨 가문의 분순 씨와 동래 정씨 가문의 귀한 독자 수용 씨는 결혼 당시 대단한 두 양반 가문의 결합이라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집은 뒷전이고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현실적이고 부지런한 살림꾼 아내는 성격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오랜 집을 지켜온 것일까요?
오래된 것들을 지키는 어머니와 엄마의 세월을 이해하는 딸
오늘은 200년 된 고택의 제삿날입니다.
탕건과 도포까지 갖춰 입은 아버지께서 수백 년 된 향로를 닦으시고, 여염집에서는 보기 드문 감실에서 위패까지 꺼내셨습니다.
아버지 정수용 씨의 조부모님 제사로, 양반집 제사상답게 상어 고기와 직접 만든 잡과편 등 특색 있는 음식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준비하는 이들은 출가외인인 딸 선주 씨와 여동생들입니다.
시집 오기 전 부부 금실의 상징인 학과 봉황 자수를 놓으며 현모양처의 삶을 꿈꿨던 분순 씨였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했던 외아들이 학창 시절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로 소통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아픈 아들은 가슴에 사무쳤지만, 남편은 밖으로 나돌며 집안 재산을 탕진하는 탓에 분순 씨는 일평생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양반가의 며느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행상을 하며 고군분투했던 분순 씨.
어머니 분순 씨는 평생을 자식과 곳간, 고택을 지키며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주 씨는 그런 어머니의 세월이 안쓰럽고 애틋합니다.
모녀는 서로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제사를 마치고 뒷정리 겸 부모님 댁 청소를 하는 선주 씨 자매.
자매가 모일 때면 항상 하는 일입니다.
오래된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망가진 집도 수용 씨와 직접 흙을 개어 보수하는 분순 씨 덕분에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부부가 그럴 때는 마음이 잘 맞습니다.
입지 않는 수십 년 된 옷도, 낡아빠진 물건도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분순 씨.
어쩌면 고택을 여태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큰딸 선주 씨는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어수선한 고택이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어머니가 차마 못하는 오래된 물건 정리에 나섭니다.
코팅이 다 벗겨진 프라이팬부터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국자까지 고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게다가 침대 밑에 숨겨둔 보따리에서는 구순 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청조끼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낡은 복대까지 등장합니다.
이런 건 좀 버리자는 딸과, 멀쩡한 물건을 왜 버리느냐며 역정을 내는 어머니의 말다툼은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팽팽합니다.
결국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한 선주 씨는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과밭에 나가보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선주 씨는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다시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모녀는 서로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사진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매주 일요일 저녁 8시 2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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